음악적이라는것 그 외

오늘 모처럼 피아노 연주회엘 갔다. 큰 홀에서의 연주가 아니라 작은 공간에서의 연주, 그래서 공간의 음향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단지 소리와 연주자의 시청각 정보만이 아니라 연주자의 숨소리나 페달 소리, 연주자의 표정까지 연주에 관한 모든것을 피부로 느낄수 있는 공연이었다.

모두 세 명의 여성 연주자가 공연을 했는데, 미국에 사는 12살 중국인, 베이징에서 온 14살 중국인,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나이가 대략 서른 정도 되어보이는 한국인이었다. 모두들 연주는 뛰어났다. 재미있는 것은 세 명 모두 그들의 나이를 대변하는 연주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첫번째 12살짜리 소녀는 테크닉도, 악상을 표현하는 능력도 나이에 비해서뿐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뛰어났지만 뭔가 색깔이나 명암이 뚜렷하지 않았고 이따금씩 자신의 소리를 듣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들이 들렸다. 14살짜리 연주자는 모든 것에서 한발자국 첫번째 연주자보다 앞서 있었고 드라마틱한 연주를 보여줬지만 역시 귀의 문제, 고음역과 저음역의 밸런스가 종종 무너지곤 했는데 특히나 오른손이 멜로디를 연주할때 '톤'이라고 하는 음의 퀄러티가 받쳐주지 못했다. 말하자면 약간 빈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레퍼투아는 모두 스크리아빈, 라벨 등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종류였는데, 만약 고전이나 바로크 음악을 연주한다면 과연 어떻게 연주할수있을지.. 그다지 좋은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두번째의 폭풍같은 연주가 끝나고 세번째 연주자는 하이든 소나타로 연주를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잘 여물고 살아있는 소리가 곡의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해석과 더불어 돋보이는 연주였다. 화려하지도 않고 까다로운 쇼팽 소나타에서는 낭만적인 요소와 고전적인 요소를 동시에 소화하면서 어느 쪽으로 기울지도 않고 딱 적정한 정도로 모든 것을 콘트롤하고 있었다. 단 한가지 흠이라면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악상의 다이내믹에 관한 에너지가 아니라 곡에 몰입하는 에너지라고나 할까. 두번째와 세번째 연주자를 비교한다면 두번째는 악기 안에서의 소리를, 세번째는 악기 바깥에서 실제의 소리를 듣는다고 할수 있을것 같다. 실제로 연주를 할때 듣는 자기의 소리와 청중이 되어 듣는 소리는 공간, 음향상의 이유뿐이 아니어도 충분히 다를수밖에 없다. 몰입의 에너지뿐 아니라 세번째 연주자는 연륜 때문인지 덜 긴장하는 느낌이었다. 무용수가 동작을 만들때, 연주자가 소리를 만들어낼때, 우리는 실제의 행위에 앞서 머리속에서 재연을 한다. 그 행위에 대한 몸의 기억으로 소리의 기억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결과와 실제의 결과를 일치시키기 위해 긴장하고 극도로 집중을 하곤한다. 느리게, 빠르게 수시로 발생하는 그 과정들이 바로 공연 행위의 매력인 것이다. 가까운 곳에 앉은 청중도 소리 뿐만 아니라 연주자의 내적 행위를 따라가곤 한다. 그래서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누르는 동작 사이사이에도 음악이 있고 그것을 듣는 것이다.

모르겠다. 어느것이 더욱 더 음악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런지. 부실한 자재로 지어서 깊이가 얕고 오래가지 않을것같지만 보는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름다운 건물과, 혹은 구조와 내구성 디자인 모두 훌륭하지만 그것이 그 건축가의 진실한 열정이 담긴것은 아닌것. 음악적 결과로서 말할수 있는 음악성과 음악적 행위에서의 음악성이란건 다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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